데스크에서 보이는 것들
하원 시간 10분 동안 데스크에서 보이는 아이들의 변화, 학부모의 진짜 질문, 그 관찰이 수업을 바꾼 기록입니다.
하원 시간 10분에 보이는 것
오후 4시 50분, 교실 문이 열리기 5분 전부터 데스크 앞 공기가 달라집니다. 저는 에픽어학원 캠퍼스 데스크에 앉아 있고, 이 자리에서는 교실 복도와 신발장, 유리문 밖에 서 계신 학부모님들까지 한눈에 들어옵니다(캠퍼스에서 시야가 가장 좋은 자리라고 자부합니다). 아이들은 교실에서 데스크까지 스무 걸음쯤을 걸어 나오는데, 그 스무 걸음에 그날 수업이 어땠는지가 거의 다 담겨 있습니다.
오늘 배운 문장을 복도에서부터 소리 내어 외우며 나오는 아이가 있고, 신발을 갈아 신는 데 유난히 오래 걸리는 아이가 있습니다. 데스크 앞에서 걸음을 늦추고 괜히 사탕 바구니를 들여다보는 아이는 대개 저에게 할 말이 있는 아이입니다. 지난달에는 한 학습자가 사흘 연속 그 바구니 앞에 서 있다가 나흘째에야 “선생님, 저 다음 주에 반 바뀌어요?”라고 물었습니다(아이들은 중요한 질문일수록 사탕을 고르는 척하면서 합니다).
하원 시간은 10분이면 끝납니다. 그런데 이 10분은 아이가 수업이라는 무대에서 내려와 아직 집이라는 무대에 오르기 전의 시간이라, 어느 쪽의 것도 아닌 맨 표정이 나옵니다. 저는 그 표정들을 데스크 수첩에 한 줄씩 적어 둡니다.
학부모의 말과 진짜 질문 사이
“별일 없었죠?” 하원 시간에 가장 많이 듣는 인사입니다. 그런데 이 질문을 하시면서 시선은 제 뒤 교실 쪽을 향해 있고, 아이가 나오면 표정부터 살피십니다. 아이 얼굴이 밝으면 질문은 거기서 끝나고, 조금이라도 굳어 있으면 두 번째 질문이 이어집니다. 그 질문의 진짜 내용은 오늘의 사건이 아니라 “우리 아이가 여기서 잘 지내고 있나요”입니다.
“숙제가 너무 많지는 않아요?”라는 질문도 비슷합니다. 정말 숙제 양을 물으시는 분도 계시지만, 며칠 지켜보면 우리 애가 따라가고는 있는지를 조심스럽게 돌려 물으시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데스크에서는 질문에 담긴 걱정이 먼저 보이는데, 걱정에는 정보보다 장면이 잘 듣는 편입니다. 그래서 저는 양 대신 장면으로 답하는 연습을 하는 중입니다. 지난주에는 “어제는 숙제 검사 받고 싶다고 수업 20분 전에 왔어요”라고 답했더니, 학부모님 어깨가 눈에 띄게 내려갔습니다.
수첩 한 줄이 교실까지 간 날
올해 봄, 매일 그날 배운 표현을 자랑하며 나오던 아이가 있었습니다. 레벨이 올라가고 반이 바뀐 뒤부터 그 아이의 하원이 조용해졌습니다. 복도에서 아무 말이 없고, 신발을 갈아 신는 데 3분씩 걸리고, 유리문을 밀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고백하자면 처음에는 이 관찰을 제가 흘려보냈습니다(데스크 일이 바빴다는 핑계를 준비해 두었지만, 사실은 제 수첩을 그 정도 무게로만 여겼던 것 같습니다). 2주쯤 지켜보다가 지나가는 말로 “그 아이 요즘 기운이 없는 것 같아요”라고만 전했고, 그 말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습니다. 기운이 없다는 말은 교실에서 확인할 방법이 없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방식을 바꿨습니다. 날짜와 장면만 적었습니다. “반 이동 후 2주째 하원 시 말수 없음, 신발장 3분, 수요일에는 교실을 나오며 뒤를 두 번 돌아봄.” 이 메모를 담임 선생님에게 건넸더니, 선생님이 수업 안을 다시 들여다봤습니다. 새 반에서 그 아이가 나이가 가장 어렸고, 짝 활동에서 늘 듣는 역할만 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담임 선생님은 다음 주부터 소리 내어 읽는 차례를 그 아이에게 먼저 주기 시작했습니다.
3주 뒤, 그 아이는 다시 복도에서부터 새 문장을 외우며 나왔습니다. 이 일이 있고 나서 금요일마다 10분씩 데스크 메모를 수업 팀과 나누는 자리가 생겼고, Jamie는 아예 루브릭에 데스크 메모 칸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지난달부터는 선생님들이 수업 전에 그 칸을 먼저 열어 보고, 가끔은 저에게 되묻기도 합니다. “그 아이 오늘 하원 때는 어땠어요?”라고요.
수첩은 오늘도 데스크 위에 있습니다
데스크에서는 수업이 보이지 않습니다. 대신 수업이 아이에게 남긴 것이 보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4시 50분이 되면 수첩을 폅니다. 스무 걸음이면 지나가는 짧은 장면들이지만, 그 안에는 교실이 다음 주에 알아야 할 것들이 들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