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 친 문장을 다시 읽는 시간

설명을 삼키고 30초를 기다리자 학생은 밑줄 친 문장으로 돌아갔습니다. 배움의 자리를 남겨 두는 수업의 세 가지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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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초의 침묵을 견디는 일

수업에서 가장 어려운 기술은 설명이 아니라 기다림입니다. 원서를 읽고 토론하는 수업에서 질문을 던지고 나면 교실에는 종종 긴 침묵이 흐릅니다. 10초가 지나면 힌트를 주고 싶어지고, 20초가 지나면 답의 절반을 대신 말하고 싶어집니다. 저도 오랫동안 그렇게 했습니다. 침묵을 수업이 막힌 신호로 읽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Wonder』를 읽던 중학교 1학년 반에서 힌트를 주려던 말을 삼키고 조금 더 기다렸을 때 다른 장면을 보았습니다. 학생은 책장을 앞으로 넘겨 자신이 밑줄 친 문장을 다시 읽고 있었습니다. “When given the choice between being right or being kind, choose kind.” 그 학생이 골라 둔 문장이었습니다. 침묵은 멈춤이 아니라 학생의 머릿속에서 문장과 경험이 연결되는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그 시간을 설명으로 채울 때마다 학생이 해야 할 생각을 제가 대신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지난달에는 제 수업을 참관한 동료 강사가 교실이 비자마자 물었습니다. “아까 그 30초, 왜 안 끼어드셨어요? 저는 뒤에서 보는데도 조마조마하던데요.” 저는 그 학생이 책장을 앞으로 넘기던 순간을 보셨느냐고 되물었고, 우리는 끼어들어야 할 때와 기다려야 할 때를 무엇으로 구분할 수 있는지를 놓고 퇴근길까지 이야기를 이어 갔습니다. 결론은 아직 내지 못했습니다.

명쾌한 설명일수록 남는 것이 적었습니다

교사에게 설명은 가장 익숙한 도구입니다. 저 역시 상징의 의미를 칠판에 정리해 주고, 인물의 변화를 화살표 도식으로 그려 주고, 아이들이 그것을 깔끔하게 받아 적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수업을 오랫동안 잘한 수업이라고 믿었습니다. 문제는 다음 시간에 드러났습니다. 지난주에 함께 정리한 주제를 새로운 장면에 적용해 보자고 하면, 아이들은 제가 했던 문장을 그대로 되풀이할 뿐 자신의 언어로 고쳐 말하지 못했습니다. 필기는 남고 생각은 남지 않았습니다.

제 설명이 명쾌할수록 학생이 스스로 헤맬 이유가 줄어든다는 사실을 그때 알게 되었습니다. 배움은 어렴풋한 생각을 자신의 말로 바꾸느라 애쓰는 동안 일어납니다. 잘 가르친다는 것은 결국 잘 배우게 한다는 것이고, 그러려면 교사는 무대의 중앙에서 한 걸음 물러나야 합니다.

질문을 만드는 사람이 배우는 사람입니다

토론 수업에서 제가 가장 기다리는 순간은 학생이 스스로 질문을 만들 때입니다. 에픽어학원의 원서 수업에서는 책을 읽고 각자 토론 질문을 하나씩 가져오게 합니다. 처음에는 주인공의 이름을 묻는 확인 질문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6주차쯤 되면 “주인공은 왜 거짓말을 한 뒤에 더 외로워졌을까?” 같은, 답이 하나가 아닌 질문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질문의 수준은 학생이 텍스트 안으로 얼마나 들어갔는지를 보여 주는 가장 정직한 지표입니다. 좋은 질문을 만들려면 책을 다시 읽어야 하고, 자신이 무엇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답을 잘 말한 학생만큼 질문을 바꿔 온 학생을 칭찬합니다. 질문이 자라는 만큼 사고도 자란다고, 적어도 지금의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배움의 자리를 마련하는 세 가지 기준

가르침 중심에서 배움 중심으로 옮겨 가는 일은 태도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저는 수업을 준비할 때 세 가지를 점검합니다. 첫째, 이 시간에 인지적인 힘을 쓰는 사람이 누구인가입니다. 요약을 제가 하면 연습도 제가 한 것입니다. 정리하고 비교하고 반박하는 일은 가능한 한 학생의 몫으로 남겨 둡니다.

둘째, 학생이 무엇을 잘하면 되는지 미리 알고 있는가입니다. 토론을 평가할 때 저는 기준을 수업 전에 공유합니다. 근거를 텍스트에서 가져왔는지, 상대의 말을 이어받았는지 같은 기준을 학생이 알고 있으면 피드백은 다음 시도의 지도가 됩니다. 셋째, 침묵과 실패의 자리를 계획에 넣었는가입니다. 헤매는 시간의 자리를 미리 비워 두면 교사는 침묵 앞에서 불안해지지 않습니다.

이 기준은 강사실에서도 살아 있습니다. 우리는 한 달에 한 번 서로의 수업을 참관하고, 끝난 뒤에는 오늘 인지적인 힘을 쓴 사람이 누구였는지를 놓고 이야기를 나눕니다. 제 침묵이 기다림이었는지 방치였는지는, 뒤에서 지켜본 동료의 눈이 저보다 정확할 때가 많습니다.

가르침이 줄어든 자리에 남는 것

교사의 말이 줄어든 교실은 비어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학생의 목소리와 책장 넘기는 소리, 생각을 고르는 침묵으로 채워집니다. 저는 여전히 설명하고 싶은 충동과 매 수업 싸웁니다. 다만 이제는 그 충동을 견딘 만큼 학생의 사고가 자란다는 것을 압니다.

잘 가르친다는 것은 얼마나 많이 전달했는가로 측정되지 않습니다. 수업이 끝난 뒤 학생이 혼자서도 질문을 만들고 근거를 찾고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는가로 측정됩니다. 교사의 역할은 지식을 건네는 사람에서 배움이 일어나는 조건을 설계하는 사람으로 옮겨 갑니다. 저는 그 변화가 교사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오히려 더 선명하게 만든다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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